연말

 언제부터가 2008년이었을까. 1년이 다 지나간 지금 떠올려보면 아마도 숭례문이 어떤 미치광이에 의해 활활 불타던 설 연휴의 마지막날, 그 날 새벽이 아닌가 싶다. 난 그날 새벽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정신이 삐뚤어졌으며, 그 삐뚤어진 정신으로 한해를 미친 듯이 살았다. 다사다난했다는 말로도 어쩐지 표현이 약한 것 같은, 그래서 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도저히 실감이 안날 것만 같은 2008년을 말이다.

 우선 참 많은 것이 변한 해였다. 국가적으론 대통령과 정권이 바뀌었으며, 학교의 과를 바꿨으며, 지금은 신분마저 바뀐 상태다. 이 와중에 성별이 바뀌거나 부모가 바뀌거나 하지 않은 게 정말 천만의 다행이지. 더군다나 이 변화가 특별한 것은 세가지중 두가지를 내 의지로 갈아치워버렸다는 것이다. 언제나 불완전연소하는 삶을 사는 것 같은 이 썩어문드러진 감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. 하지만 적어도 내 의지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뜨겁진 않아도 미적지근하진 않은 한해를 보낸게 아닌가, 이렇게 애써 자축해본다. 어쨌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보단 낫지 않은가.

 하지만 더 기뻐해야할 것은 이런 무지막지한 시대의 분탕질속에서 손에서 놓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겠지. 아직까지 난 그런대로 멀쩡해보이는 집에서 그런대로 살만한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다. 아마 근시일내에 바뀌지 않을까 싶어 불안하기만한 풍경이지만, 지금은 무사히 2008년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. 그리고 가급적 내년도 내후년도 같이 갈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.

 2009년은 추운해가 될것이라는 이도 많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이도 많다. 뭐 아무래도 좋다. 올해처럼 극단적으로 무언가가 변해버리던지, 그렇지 않던지 그건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. 단지 올해처럼 글로 남길만큼 특기할만한 그런 해이길 바래본다.

by longfin | 2008/12/30 22:05 | Diary[반말] | 트랙백 | 덧글(1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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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incl at 2008/12/31 12:30
재밌는 글이군요.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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